𝙇𝘼𝙓 𝙒𝙄𝙆𝙄
최근 변경
최근 토론
임의 문서
도구
최근 변경
1.19 사건
(편집 요청)
[알림]
문서를 편집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편집 요청으로 이동되었습니다.
편집 권한이 부족합니다. 로그인된 사용자(이)여야 합니다. 해당 문서의
ACL 탭
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닫기
RAW 편집
미리보기
=== [[노던에어 항공 175편 테러 사건|두 번째 충돌: 제2세계무역센터]] ===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Gray><tablewidth=400><nopad> [[파일:npt2-impact.jpg|width=100%]] || || 노던에어 175편이 세계무역센터 제2타워(WTC2)에 충돌하기 직전의 모습 || 승객 51명과 승무원 9명을 태우고 비행 중이던 [[노던에어 175편(Northern Air Flight 175)]]은, 오전 9시 29분경 관제소와의 교신이 끊겼다. 비행기는 정상 항로를 이탈해 벨포르 상공으로 진입했으며, 곧 불규칙한 기동과 함께 시속 850km에 달하는 고속으로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루이나 연방항공청(RFA)이 제공한 관제기록에 따르면, 이 항공편은 제1 타워 충돌로부터 약 17분 후, 정확히 세계무역센터 제2타워(WTC2)의 동측 면을 향해 돌진해 충돌하였다.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Gray><nopad> [youtube(pz6_8WAIGb4, start=402s)] || || 노던에어 175편이 세계무역센터 제2타워에 충돌하는 장면[* 제1 타워 피격 직후 아직 '테러'로 규정되지 않았던 혼란 속에서, 루이나 출신의 촬영 감독 '''에반 페어먼(Evan Fairmon)'''이 현장 인근에서 상황을 촬영하던 중 이 장면을 포착했다. 이 영상은 NA175편의 충돌 장면을 **가장 가까이에서 고화질로 담은 영상** 중 하나로 꼽힌다. [[루이나 방송협회]]는 이 영상을 복원해 [[https://youtu.be/UygHfcBEfPs&t=191|고음질 버전]]으로도 제공하였다.] ||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Gray><nopad> [youtube(51z7PuxS3zw)] || || 테러 이후 [[CNN]] 뉴스에서 나온 제보된 2차 테러 영상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0,Gray><bgcolor=#000> '''[[노던에어 항공 175편 테러 사건|{{{#fff NA175}}}]][br]{{{+3 {{{#white AM 9:03}}}}}}''' || 결국 1WTC가 불타는 모습이 루이나 언론사들을 통해 생방송으로 중계되던 9시 3분, '''수많은 사람들의 눈과 방송 카메라가 전부 WTC를 향한 상태에서 두 번째 테러가 일어났다.''' 각 언론사들이 1WTC가 불타는 모습을 중계하던 중 실시간으로 또 다른 비행기가 2WTC에 충돌하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1WTC 항공기 충돌을 아직 테러로 보도하지 않고, 여전히 비행기 충돌 원인을 확인하고 있던 당시 속보 방송 앵커들과 아나운서들은 중계 카메라를 통해 들어오는 적나라한 참상을 보고 비명을 지르거나 최대한 자제해서 비속어를 내뱉는 등 경악했다. 당시 NBC, RBS, UZZ 등 지상파 모든 방송이 1WTC의 화재 현장을 속보로 전하고 있었고, 루이나인 상당수가 이를 시청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미 비행기 충돌로 불타던 1WTC 바로 옆의 2WTC에 여객기가 충돌하는 순간, "루이나가 공격 받고있다"[* 실제로 당시 다수 언론이 'Attack'이라는 표현을 헤드라인에 썼다.]는 사실을 수천만 시청자들이 실시간으로 확인한 셈이었다. 위 UZZ 동영상의 카메라맨은 항공기소음이 커지던 시점부터 크게 동요해 화면이 크게 흔들렸고, 아나운서와 취재진은 10초 가량 말문이 막혀버렸다. 생방송 중 실시간으로 발표 등을 중계하는 게 아닌 이상 아나운서나 리포터가 10초씩이나 말이 끊기면 방송사고인데, 이 전대미문의 상황은 모두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이는 1·19 테러가 굉장히 치밀하게 계획된 테러였음을 증명하는데, 1WTC 충돌 직후 이목이 집중된 상태에서 시간차를 두고 옆건물에 또 다시 충돌하며 루이나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테러라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달한 것'''이다. 사람들이 사고현장을 보고 있는 상태에서 두 번째 테러가 가해진 것은 현재까지도 유례를 못 찾아볼 정도로 매우 충격적인 사례이다. 루이나의 중심지인 벨포르를, 그것도 두 번의 공격이 가능하고 충격을 가장 극대화시킬 수 있는 구조와 환경을 갖춘 쌍둥이 빌딩을 선택한 까닭도 거기에 있다.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Gray><nopad> [youtube(vwKQXsXJDX4, start=110)] || || 시민들이 두 번째 충돌이 발생하여 경악하는 모습 || 첫 번째야 사고일 가능성이 있었지만, 바로 똑같은 종류의 사고가 그것도 바로 옆 건물에서 벌어져 누가 봐도 '''고의적인 테러 공격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첫 충돌이 발생한 상태에서 바로 옆 빌딩에 두 번째 비행기가 충돌했으니 사람들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당시 [[RBS]] 뉴스 중계 앵커는 충돌 장면을 본 직후 “이건 단순한 사고가 아닙니다. 의도적인 겁니다.(This seems to be on purpose)”라고 말할 정도로, 현장에 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방송국 관계자들 역시 점차 이것이 우연한 항공사고가 아닌, 치밀하게 계획된 테러임을 감지하고 있었다.[* 이후 RBS와 VNL의 뉴스 타이틀은 곧바로 "'''루이나, 공격받다(Ruina Under Attack)'''"로 바뀌었다. 이를 보면 2차 충돌을 본 다수 시민들과 언론이 즉각적으로 테러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당시인 2001년, 루이나는 아직 전국적인 스마트폰 보급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영상 촬영이 가능한 휴대폰도 고급형 일부에만 한정되어 있었다. 대다수 시민은 아날로그 TV나 유선전화에 의존했고, 무선인터넷(WAP) 역시 속도는 느리고 요금은 매우 비쌌다.] 루이나 전역에서는 1차 충돌 직후부터 [[RBS]], [[TNC]], [[VNL]] 등 주요 방송사가 일제히 특별 편성을 시작했다. 특히 벨포르, 세인트 바룬, 에포르 등의 도시에서는 긴급 속보 방송이 공영망을 통해 전국으로 퍼졌고, 대학 포럼과 일부 고등학교 학생회 내부망에서는 CNN이나 VNL 중계 영상을 저장해 개인 서버에 업로드하는 등 PC통신 기반의 정보 공유가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졌다. 다음날인 1월 20일부터는 방송 3사가 전국 방송 일정을 중단하고 하루 종일 속보로 사건을 다루었으며, 시민들은 극도의 공포와 혼란에 빠져들었다. 당시 루이나 현지의 뉴스 생중계와 시민 촬영 영상은, 두 항공기 충돌 장면과 그 후 이어진 사람들의 충격, 절규, 혼란을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선명하게 담아냈다. 1차 충돌 직후 불과 17분 만에 일어난 2차 자살공격은, 단순히 사고가 아닌 국가적 재난이라는 사실을 실시간으로 전 국민에게 각인시켰다. 생중계 중에는 세계무역센터 인근 고등학교에 폭발물이 설치되었다는 속보가 나오기도 했고, 주변 건물이나 차량에서 연쇄적으로 폭발이 발생했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실제로는 고온의 잔해가 인근 차량의 휘발유 혹은 LPG 탱크에 떨어지며 급격한 압력 상승으로 연쇄폭발이 발생한 것이다.] 심지어 국립도서관과 국가기록청에 불이 났다는 보도까지 나오며, 경찰과 소방, 구조대, 언론사 전부가 사실 확인조차 힘든 혼돈에 휩싸인 채 각종 오보와 루머를 내보냈다. 초강대국 루이나의 심장부인 벨포르, 그것도 대통령궁과 의회에서 불과 몇 블록 떨어진 도심 중심가가 전혀 대비 없이 공격당했다는 현실은, 국민들에게 상상 이상의 불안을 안겨주었다. 자살 테러를 감행할 만큼 조직적인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그보다 훨씬 더 무자비한 공격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퍼졌고, 가해자가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상황은 공포를 더욱 키웠다. 조사가 본격화된 뒤에야 이 테러가 고랜드계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조직 '알후라 알자미아야(Al-Hura al-Zamiya)'의 소행임이 밝혀졌지만, 당시만 해도 루이나 국민은 언제, 어디서, 얼마나 큰 테러가 또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특히 VNL에서는 1WTC 인근 지하철역이나 도로변에서 폭탄이 터졌고 그것이 북쪽 타워 붕괴의 원인이 되었다는 내용을 보도하여, 후일 수많은 음모론의 단초가 되었다. 또한 2WTC 하층부에 있었던 이들은 상층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도무지 파악하지 못한 채, 방송에서는 “자리에 있으라”고 했다가 “대피하라”고 다시 말을 바꾸는 혼선 속에 갇혀 있었다.[* 이는 2WTC 충돌기(Northern Air 175)가 외벽 측면을 강타했기 때문으로, 건물의 전력과 통신망이 즉시 차단되지 않아 상당 시간 동안 방송과 전력 공급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충돌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타워 상층부에 고립된 일부 사람들은 뜨거운 열기와 유독가스, 그리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건물 밖으로 몸을 던졌다. 이들은 대부분 북쪽 타워(1WTC)에 고립된 사람들이었으며, 당시 내부에선 질식사하거나 투신 외에는 다른 생존 수단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모습은 전 세계에 생중계되어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오전 9시 30분경, 북타워에서 투신한 세 사람 중 한 명이 지상에 있던 소방대원 대니얼 T. 셔(Daniel T. Suhr)를 강타해 그 자리에서 사망하게 한 사건은 응급요원 중 최초의 희생 사례로 기록된다. 추락사한 희생자의 수는 2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며, 다수의 시신은 건물 붕괴와 함께 유실되어 신원 확인조차 이루어지지 못했다. 당시 루이나 정부는 투신자 희생자가 없다는 공식 입장을 고수했으나, 수년 뒤 유족 및 언론의 항의에 따라 200명 이상이 투신으로 사망했음을 공식 인정하였다. 투신은 단순한 자살이 아닌,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연기와 불길, 무너져 내리는 구조물 사이에서 구조를 기다릴 수 없었던 이들은 결국 스스로 뛰어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언론 보도와 정부 문서 등에서 '점퍼(Jumper)'로 분류되며, 초기에는 이들의 마지막 모습이 무분별하게 유포되었으나, 최근 들어 존엄성을 지키려는 노력으로 상당수 자료가 삭제되었다. 구조활동에 나선 지상 소방대원들은 절망에 휩싸였다. 건물 위에서 사람들이 차례차례 떨어져 내리는 충격음이 끊임없이 울려 퍼졌고, 현장에 있던 구조요원들은 그 ‘쾅’ 소리가 무엇인지 깨달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이 상황은 뉴스카메라에도 포착되었고, 루이나 전역에 생중계되었다. 일각에서는 헬기를 통한 구조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으나, 당시 초고층 화재 현장에서 발생하는 강력한 기류와 시야 확보 문제로 인해, 헬기의 투입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투입된 헬기들은 단지 고도를 유지하며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용도에 그쳤다.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Gray><nopad> [youtube(vJ3cI1EHR_w, start=330s)]|| || 벨포르 경찰 항공대의 구조시도[*시청주의] || 그나마 노던에어 항공 175편에게 피격당한 2WTC에 9시 37분 벨포르 경찰 항공대의 헬리콥터가 위험을 무릅쓰고 세계무역센터의 옥상으로 착륙과 강하(레펠)를 시도했으나, 화재의 열기 때문에 엔진 온도가 급상승해 실패했다. 당시 참가했던 항공대원의 증언으로 옥상의 돌멩이까지 다 보일정도로 가까이 접근했다고 한다(영상 8분13초). 강하에 실패한 후엔 옥상에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그 인원이라도 구조하려 했으나 당시 옥상엔 아무도 없어서 수포로 돌아갔다. 쌍둥이 빌딩의 모든 문은 하나의 제어 시스템을 통해 컨트롤 되는데, 하필 충돌로 인해 제어 시스템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상층부에 있던 생존자들이 헬기 구조를 목표로 어떻게든 옥상 문을 개방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으나, 결국 문은 '''빌딩이 무너지는 그 순간까지 열리지 않았다.''' 결국 9시 41분에 벨포르 경찰청이 "헬기 구조 작업을 포기하라"고 지시하여 헬기를 통한 구조시도는 중단했다.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Gray><nopad><tablewidth=600> [youtube(9qtytifeAp8)] || ||<nopad> [[파일:external/iconicphotosfileswordpresscom/andrew-card-richard.webp|width=100%]] || || 대통령 비서실장 앤드루 키드로부터 '''루이나가 공격받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듣고 있는 [[리처드 엘스워스]] 대통령 || >"A second plane hit the second tower, '''Ruina is under attack.'''" >"두 번째 항공기가 두 번째 타워에 충돌했습니다. '''루이나가 공격받고 있습니다.'''" >---- >앤드루 키드 백악관 비서실장, 엘스워스에게 귓속말로 소식을 전하며. 같은 시각, 벨포르 인근 롱게일 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에게 시민교육 그림 동화책을 읽어주는 수업에 참관 중이던 [[리처드 엘스워스]] 대통령[* 수업 참관 직전에 첫 번째 비행기가 남부 타워에 충돌했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당시 엘스워스 대통령과 참모진은 이를 단순한 항공사고로 여겼다. 이후 20주년 특별 다큐멘터리 《1.19: 그날의 기록》에서 엘스워스는 “믿기 어려운 사고라 생각했지, 루이나 본토가 공격당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또한 이 시점까지 대통령 전용차에 타고 있던 엘스워스는 아직 뉴스 영상도 보지 못한 상태였다.]은 대통령실 비서실장 에드먼드 베일리로부터 '''루이나가 공격받고 있다'''는 충격적인 보고를 받게 된다. 엘스워스 대통령은 보고를 받은 뒤에도 수업을 계속 지켜보다가 약 6분가량 지난 뒤 교실을 조용히 떠났다.[* 여담으로, 당시 수업에선 '우리 모두의 집(The House for All)'이라는 동화책을 낭독 중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 '''"We will build again."(우리는 다시 지을 거예요)'''였던 탓에 음모론적 추측이 돌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우연이며, 루이나 국립교육원에 의해 정기 교육 자료로 사용되던 동화 중 하나였다.] 이후 루이나 진상조사위원회로부터 "왜 6분 동안 교실에 머물렀느냐"는 지적을 받자, 엘스워스는 “학생들을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서였고, 상황을 정리하며 최대한 평온한 태도를 유지하려 했다”고 해명했다.[* 당시 수업은 전국에 생중계되던 ‘우리 아이들의 아침’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다.] 이후 인터뷰에서도 그는 “그 순간 당황하거나 감정을 드러내면 더 큰 혼란이 올 것 같았다”며, 의도적으로 침착을 유지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수업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성인이 되어 제작에 참여한 다큐멘터리 《1.19 키즈》에서도 이 점에 대해 엘스워스의 대응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사건 이후 대통령실은 “엘스워스 대통령은 즉시 회의실로 이동했다”고 발표했으나, 실제 영상에서 엘스워스는 보고를 받은 직후 표정이 급격히 굳어지고, 이후 교실에서도 수업에 집중하지 못한 채 깊은 심경에 잠긴 모습이 포착되었다. 직후 엘스워스 대통령은 학교 체육관으로 이동해, 1.19 테러에 관한 첫 번째 긴급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이 담화는 예정된 일정과는 전혀 무관한 급박한 기자회견 형식으로 진행되었으며, 테러 발생 약 90분 만에 공개된 것이다. 이후에도 엘스워스 대통령은 수차례에 걸쳐 국민 담화와 의회 연설을 통해 충격에 빠진 루이나 국민들을 안심시키는 데 전력을 다했다. 이 연설들 중 1월 19일 밤 11시에 방송된 긴급 담화는 현재까지도 가장 잘 알려져 있다.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Gray><nopad> [youtube(9M6qgy0N1Vg)] || || '''1.19 대국민 연설''' || 1.19 테러 당일, 벨포르 수도권 상공에서 발생한 비정상 항로 항공기 신호에 불안을 느낀 루이나 항공안전청(NAAS)은 즉시 루이나 공군과의 연락을 시도했으나, 당시 각급 기관은 새해 연휴 이후 첫 업무 주간의 인력 공백과 통신 혼선에 시달리고 있었다. 일부 관제소는 민간기 전산 오류로 인해 초기에 경보 자체를 누락했으며, 비행 정보가 너무 빠르게 쏟아진 데다, 상당수는 SNS를 통한 확인되지 않은 제보가 섞여 혼란이 가중되었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것은 같은 날 오전 8시부터 시행 중이던 루이나 공군 제15전술비행단의 방공훈련이었다. 훈련 시나리오와 실제 상황의 구분이 처음에는 불가능했으며, 이로 인해 요격기 투입과 통제권 이양이 수 분에서 수십 분씩 지연되었다. 루이나군 통신기록에 따르면, 테러 발생 직전까지도 "훈련 상황인지 실제 대응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보고가 다수 있었으며, 이는 이후 국회 정보위원회 청문회에서도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항공안전청, 국방부, 대통령실, 그리고 현장 공군 관제요원들은 루이나 영공을 비행 중인 2,300여 대의 항공기 중 실제 납치기로 추정되는 항공기의 궤도와 식별 부호를 추려내야 하는 전례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결과적으로 벨포르 남부 외곽에서 납치 항공기가 루이나 타워에 충돌하기까지, 공군은 단 한 발의 경고사격조차 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대테러 대응체계의 전면적 개혁이 불가피해졌다.
요약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비로그인 상태로 편집합니다.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로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편집 역사에 본인이 사용하는 IP(127.0.0.1) 주소 전체가 영구히 기록됩니다.
저장
닫기
Liberty
|
the seed